헌법재판소가 10일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65)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헌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재동 청사 대심판정에서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2016헌나1) 선고기일을 열고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했다. 탄핵 인용 결정은 선고와 동시에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대통령 신분은 곧바로 박탈됐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해 최순실(61·구속기소·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사익 추구를 돕고 국가 기밀인 담긴 각종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해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했다면서 이는 대통령을 파면해야 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피청구인(박 대통령)은 정호성 대통령 부속비서관을 통해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각종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일정과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했다"며 "최서원은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일부는 최서원의 이권 추구를 도왔다"고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은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라고 지시해, 대기업들로부터 486억 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미르, 288억 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를 설립하게 했다"며 "그러나 두 재단의 임직원 임면, 사업 추진, 자금 집행, 업무 지시 등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이 했고, 재단법인에 출연한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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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해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고, 이 의무는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며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최서원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며, 피청구인의 지시 또는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서원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런데도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함으로써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다. 그 결과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른 안종범, 정호성 등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다"면서 "이같은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면서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다만 박 대통령의 △세월호 관련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부당 인사 △언론의 자유 침해 의혹 등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거나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박 대통령 측이 주장한 국회 탄핵소추 과정의 흠결과 8인 재판부 결정의 위헌성 등 각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헌재 결정에 대해 국회 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국회 소추위원인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선고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국민주권주의, 대통령이든 누구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를 확인했다"며 "이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버려야 한다.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협조해주시기 바란다"면서 결과에 대한 승복을 강조했다. 또 "87년 제정된 현행 헌법 체제에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을 운영하기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 최순실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면서 "이제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 통치제도를 바꾸고 상생·협력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정치권의 임무로 부여받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서석구 변호사는 대리인단 전체가 아닌 일원으로서의 견해라는 전제로 "이 재판이 올바른 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변론 과정에서) 증거 신청을 무더기로 기각시키는 경우에 한정해 '중대한 결심'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헌재 소장이 무더기로 증거 신청을 기각했다"며 "오늘 만장일치 결과를 보면 증거 신청을 무더기로 기각할 때 이미 결론이 나온 것 아닌가 추측된다"고 했다. 그는 '판결에 승복하지 못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 발언은 대리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이라며 "다른 대리인들과 협의해서 나중에 이야기하겠다"며 일단 말을 아꼈다.
서 변호사와 함께 헌재 심판정에 출석했던 대리인인 이중환 변호사는 선고 직후 별도의 발언을 하거나 질문을 받지 않고 헌재를 빠져나갔다. 변론과정에서 '막말' 논란이 일었던 김평우 변호사는 이날 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