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나 손가락 끝이 조금 절단된 경찰관 지망생들이 `팔다리가 멀쩡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는 채용 규정에 울상을 짓고 있다.
경기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정모(17.여)양은 지난해 부모님, 담임 선생님과 상의한 끝에 학교를 그만두고 올해 고졸 검정고시와 경찰관 공채 시험을 준비 중이다.
어릴 때 사고로 왼쪽 발 2번째와 3번째 발가락의 발톱 부분이 조금 잘려나간 상태지만 걷고 뛰고 달리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행 경찰관 채용 규정대로라면 정양은 공채에 응시조차 하지 못한다. `사지가 완전해야 한다'는 응시 자격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정양은 전국 모든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민원을 냈다.
그는 "업무 수행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텐데 `외형상 탈락'이라니 억울하다"며 "의사 소견서를 받아 제출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정양과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경찰청 자유게시판에는 9개월째 경찰관 채용 시험을 준비 중인 20대 남성의 사연이 사진과 함께 게시돼 있다.
글을 올린 이 남성의 형은 "어렸을 때 동생의 왼쪽 집게손가락 끝 부분이 절단됐지만 군대도 만기 전역했는데 시험조차 볼 수 없다고 해 실의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 채용의 신체조건 규정은 지난해 2차 공채부터 바뀌었다. 키, 몸무게, 가슴둘레가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한다는 조건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이를 삭제한 것이다.
다만 `사지가 완전한 자'라는 규정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일부 응시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채용 담당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들의 사지가 완전하다고 판단되지 않아 채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일단 경찰관이 되고 나면 이들처럼 손가락이나 발가락 일부가 절단되는 가벼운 사고를 당하더라도 계속 근무할 수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규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24일 "키와 몸무게 제한을 없애라고 권고했던 취지가 `경찰관 직무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며 "애매모호한 채용 규정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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