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삭브록소사이어티’는 우리나라 해외 이민자들의 국적 포기가 공식적으로 집계가 가능한 아시아 선진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가까운 일본(89명)과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4월 28일, 미국 시민권 문제를 다루는 공개 포럼 사이트인 ‘아이삭브록소사이어티(IsaacBrockSociety)’는 우리나라 해외 이민자들의 국적 포기가 공식적으로 집계가 가능한 아시아 선진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는 인구 10만명당 4.5명, 홍콩은 25명, 대만은 152명, 싱가포르는 431명인 데 비해 한국은 1680명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까운 일본(89명)과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수치다. 스웨덴은 1.66명, 그리스 3명, 폴란드 17.7명, 크로아티아 200명, 미국은 28명이었다. 이 사이트는 “한국은 국적을 상실하는 사람이 연간 2만5000명으로, 귀화자보다 많은 유일한 아시아의 선진국”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형사건, 사고 발생한 해 대폭 늘어
사실 충격적인 수치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적법과 병역의무로 인한 재외동포의 국적 포기를 감안해야 하므로 숫자만으로 단순 비교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추세를 분석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해럴드경제에서는 해외 이민자 수의 증가에 대해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해에 그 수가 증가한다는 분석을 해 주목을 받았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70~80년대 한해 3만~4만명에 이르던 해외 이민자 수가 경제가 발전하면서 수백명까지 떨어졌었지만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던 1993~1995년 3년 동안 이민자 수는 1만4477명에서 1만5917명으로 증가했고, IMF 금융위기 당시 1만2484명에서 98년에는 1만3974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울러 세월호 침몰사고로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전망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법무부의 2014년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 1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포기자가 국적 취득 신청자보다 2800명이나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결혼으로 인한 귀화자의 증가와 해외 이민의 감소로 매년 국적 취득 신청자가 국적 이탈자보다 많았으나 지난해부터 국적 포기자가 많아지면서 역전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결혼이민 심사 강화로 인해 동남아 여성들의 국적 취득 신청이 줄어든 데 비해 미국·캐나다·호주 등의 선진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민 2세·3세들이 취업을 위해 국내에 들어올 경우 병역을 면하기 위해 자진해서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명문대 출신의 20~30대들이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계를 들어 외국어 공부와 현지 취업정보를 모으고 자금도 마련하고 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치열한 입시전쟁과 취업전쟁에서 승리하여 또래 중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민업계에 따르면 북유럽 이민을 알아보고 떠나는 사람들의 전 직장을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가장 많고, LG전자가 그 다음이라고 한다. 모두 국내에서는 최고의 직장들 중 하나다.
지금까지의 이민 대상국들은 경제적인 기회가 많은 미국·일본·중국이나 쾌적한 자연환경과 자녀교육에 좋은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이었다. 주요 이민수요도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북유럽은 까다로운 이민 절차와 조건으로 인해 선호하던 곳이 아니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는 성공적인 30대들이 북유럽으로 짐을 싸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문대 졸업 엘리트 직장인들도 짐 싸
첫 번째는 경쟁에 지쳤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통과하여 최고의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시 직장 내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경쟁, 그리고 자녀를 갖게 되면 자녀교육전쟁,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사회에 신물이 난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쟁에서 낙오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늘 삶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 북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사회복지망을 구축해 실직과 병으로 소득이 없더라도 본인이 낸 세금으로 국가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삶 자체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다.
두 번째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무한경쟁 사회인 한국에선 경쟁의 룰이 공정하지 않다. 최근 갑질 논란으로 대변되는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는 것이다. 비타500 박스 안의 현금으로 나타나는 지배층의 온갖 비리와 추문은 사회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간통도 하고 온갖 부정 청탁과 뇌물 같은 추문이 많았지만 세종대왕이 감싸서 명재상을 만들었다며 사소한 과오를 덮고 큰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자고 주장했다. 그런 사람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기업을 경영하고 대학을 운영한다. 힘 있는 사람들, 가진 자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 번째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나타난 총체적인 국가의 안전망 부재는 언제 어디서 그러한 사고가 우리에게 닥칠지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거듭된 사고들 속에서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개선되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하니 인적 자원이 중요한 경쟁력이라며 늘 교육을 중시해 왔다. 한국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불리며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것은 무한경쟁 속에서 가족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누구나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어한다. 굳이 낯선 언어와 환경, 사람들 속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다면,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 이는 그만큼 그런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고 싶을 만큼 한국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